너구리 허튼소리.(자작글)

삶은....

서프란 2007. 1. 3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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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전

수입된 원목(통나무)의 제재를 의뢰하기 위해  

L사장이 운영하는 제재소를 자주 들렸었는데

그는 7 남매의 장남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결혼해서 그시절  대부분 어려웠었지만

그 역시 신혼때 아주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고 한다.

 

옆지기가 조그만 미용실을 운영해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듯 했었는데

도심으로 미용실을 이전하면서 날로 번창해서

남푠에게 사업 자금을 대줄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되어

남푠은 왔다리 갔다리 직장을 마무리하고 운수업체를 인수해서 경영하게 되고

제재소까지 손을 대게됐던 것이다.

 

옆지기의 미용실도 지방 도시에서는 아주 큰 120평 규모에 종업원도 17명이나 되고

서울 명동(그 시절)에서 남자 미용사를 스카웃해서 명실공히 매머드 미용실였었다.

가정 경제의 어려움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어려움이란 끝이 난걸로 보였었다 .

 

한날은 제재소 사무실에서 함께 고시돕을 치는디  L사장이 두판에 2ㅇ만원의 거금이 깨졌다.

동양화를 든 손에 떨림이 감지된다.

허~억!

저 양반의 스케일(봇짱이)이 저 정도 밖에...?

그뒤 주의깊게 살펴 봤더니 그게 아니라 알콜 중독 초기 증상인

수전증(손떨림) 증상이였던거다.

 

옆지기의 바쁜 생활로 인한 늦은 퇴근. 자녀들마져 학교 때문에 귀가가 늦어지고

집에 퇴근하면 노모와 단둘뿐,  그러다 보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것이 음주였다.

출근하면 한잔 할 건수찾기에 여념이 읍다.

 

노모는 불교에 매우 열심이셨는데

L 사장은 견육(영양탕 혹은 보신탕이라고도 함)을 엄청시레 좋아해서

1년에 딱 하루만(사월 초파일) 묵지않고 매일 하루에 한번씩은 꼭 챙겨 묵었었다.

지방대이긴 하지만 학생 회장까지 지냈고 병원 사무장까지 지낸 사람이

우찌 그리 무지해서 고넘에 견육이 술 안주로는 최고이고 아무리 이슬이를 많이 마셔도

고거하고 묵으믄 괜찮은 줄로만 알았었을까 ?

 

어느 날인가 자꾸 피곤하다고 하길래 병원에 들러 종합검진을 받아보라 했더니

만약에 큰병이라고 까봐 겁이 난다믄서 여러해가 지났고

견디지 못해 병원을 찾았을때는 이미 늦어 4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일을 지켜 보믄서

여가시간의 무료함을 왜 이슬이로 때우려 하는거고

더 즐겁고 유익한 것은 과연 없었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그  때문에 내삶은 지루함이 없는 유익한 방법을 생각하게 되고 터득했는지도 모른다.

늘 하루해가 짧게 느끼며 살고 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정원은 아름다운 정원이 될수도 있고

잡풀만 우거진 황폐한 정원이 될수도 있음이다.

 

그래서 감히 너구리는 말한다

[삶은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시간의 정원이다]라고...

 

 

글 / 산골 너구리.

 


 

Es War Doch Alles Nur Ein Traum - Monika Martin

(그저 바람처럼 스쳐가는 꿈이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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