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자작글)

[스크랩] 살다 보면. (5) [내 입술 돌려 도.]

서프란 2006. 2. 6. 11:38

채팅 신청이 들어 왔다.
무슨 형사 취조처럼 질문을 해 대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독수리 타법으로 답 하자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직업은 뭐냐, 돈은 잘 버느냐,
급기야 휴대폰 전화 번호 까지 묻는다.
얼마후 전화가 온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감성적이고 좋다고 칭찬한다.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이 되느냐고 한다.
날짜, 시간, 장소를 정하고 통화를 끝낸다.
혹씨 꽃비암 ? 꽃비암 인들 어떠리 한번 물려보는 거지...
날개가 타버려 땅바닥에 추락한다 해도
불나비가 되어 불구덩이에 뛰어 들어 보는거다 하고
독한 마음을 먹어본다.

약속 장소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피아노 선율이 곱게 흐르고
레귤러 커피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아직 안왔나 하면서 전화를 한다.
발신음이 끝나자 마자 저쪽 창 끝에서 착신 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곳으로 다가가서 [혹씨 꽃님이 아니십니까 ? ]하고
물으니 맞는다고 한다.
와우 ! 커다란 눈망울, 선이 뚜렷한 입술,
내 취향이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거야...
술도 아니 먹었는데 혀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다.
[반갑습니다. 대단한 미인 이시네요.천생 연분,
아니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처음 뵙는분 갖질 않네요.]
선남 선녀 맞선 보는 자리도 아닌데 웬 천생 연분이람..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줄도 모른다.

창밖으로 보이는 잎이 떨어진 나목들처럼 솔직해지는 거다.
굳이 감정을 속일 필요까지야...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누가 먼저랄것 없이 찻잔을 내려놓고

쪼~옥
쮸~욱
아! 키쓰라는 거이 이렇게도 감미로울 수가...
산골 너구리 피속엔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 한다.
!
!
!
!
?
?
[얘가! 얘가? 시방 너 모하는거야 ?]
어디서 울 마눌님 톤 높은 소리가 들린다.


허억!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니.
[얼른 가서 입닦고 양치질이나 하고 와요.아이구 드러워라.]

점심에 갈치 구이를 먹고 졸음에 겨워 깜박 잠이 들었는데
우리집 강아지 찡코(페키니즈 종)가 갈치냄새의 유혹에 이끌려
내 입술을 열심히 빨고 있었던 거고 난 꿈을 꾸고 있었던 거다.

[찡코야 ! 내 입술 돌려 도... 없었던거로 하면 안 되겠니 ?]
고추장만 묻었어도 감미로운 키쓰의 여운이 아까워 안 닦을텐데..

가까이 갈 일도 없겠지만 당분간은 울 마눌님 입술 근처엔 접근 금지가 될것 같다.
설마, 개 밥그릇에 밥 퍼주고 찡코랑 겸상 하라고 하진 않겠지...?
우째 이런 일이...ㅉㅉㅉ.


개년(병술년)에 개 땜시 정초부터 개꿈 꾸고,
금년운세 대박인지 쪽박인지
가눔 하기가 어렵다.



몸이 나른해지는걸 보니
봄도 멀지않은 곳에 와 있나보다.


산골 너구리.


출처 : 살다 보면. (5) [내 입술 돌려 도.]
글쓴이 : 서프란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