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첫 주말, 잠에서 깨어나니 커튼 사이로 강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차, 시간이 많이 지났군' 커튼을 젖히자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봤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을이 왔다.
오전이 날아갔지만 이번 주말을 집에서만 보내고 싶진 않았다. 멀리 떠나고도 싶었지만 이미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야 했다.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고민하다가 인천의 섬 중 바다를 보며 등산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은 영화 촬영지 '실미도'와 붙어있어 유명해진 섬, '무의도'이다.
- ▲ 무의도 당산에서 바라본 실미도의 모습.
무의도는 인천대교가 생겨 1~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등산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다. 간편한 복장과 함께 여름 내 묵혀두었던 등산화를 꺼내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차에 몸을 싣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인천공항 방면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무의도행 배가 있는 잠진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벌써부터 등산객들과 차량들로 줄지어있었다. 반면에 오전 산행을 벌써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등산객도 있었다. '왜 이 작은 섬에 등산객이 몰리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 ▲ 잠진도 선착장에서 승선하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
배에 오르기 위해 왕복 승선권을 구입했다. 비용은 성인 기준 3천원이고 자동차는 2만원부터 크기에 따라 다르다. 30분마다 출항하고 있으니 굳이 시간을 알아갈 필요는 없다. 정박해 있는 배 너머로 무의도가 보인다. 이렇게 큰 배가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승선 완료와 동시에 배가 움직였고 뱃머리를 돌리는 가 싶더니 배는 벌써 무의도에 도착해 있었다.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해 스톱워치를 가동시킨 결과 정확히 3분38초 걸렸다. 조금은 허무한 뱃길이었다.
- ▲ 잠진도 선착장에서 무의도까지는 배로 3분 38초가 걸린다.
무의도는 마치 옷이 춤추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등산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려는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무의도에는 호룡곡산(264m)과 국사봉(236m) 등 2개의 봉우리가 있다. 이들 봉우리에 오르면 확 트인 바다 건너편으로 펼쳐진 인천 송도와 월미도를 확인할 수 있고, 송도에서 인천공항을 잇는 '인천대교'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등산로 주변을 끼고 생태관찰로(340m), 산림 체험로(4㎞), 전망대를 갖춘 삼림욕장도 있어 등산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
- ▲ 무의도 등산로는 선착장엣어부터 당산과 호룡곡산(264m), 국사봉(236m), 하나개해수욕장을 지난다.
무의도 선착장에 내리자 바로 앞에 당산 등산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등산객들 중 상당수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이곳부터 오르지 않고 국사봉 또는 호룡곡산 등산로 초입부터 등산하려는 의도에서다. 기자는 튼튼한 다리와 '기자정신'을 발휘해 등산로 입구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 여정은 선착장→당산→국사봉→호룡곡산→하나개해수욕장 이다. 4시간은 족히 걸리는 산행이다. 입구에서 등산지도를 확인하고 한발 한발 산을 올랐다. 경사는 비교적 완만했고 등산로 주위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곳이 정말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란 말인가…' 생각이 들 때 즈음 진한 바다 향과 함께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풀벌레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등도 함께 들렸다. 어느 산행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 ▲ 호룡곡산에서 바라본 무의도 마을의 전경.
당산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자 아픔을 간직한 섬 '실미도'가 보였다. 하루에 2번만 연결된다는 바닷길도 열려있었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이라지만 파란하늘과 반짝이는 바다에 둘러싸인 실미도는 환상적이다 못해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재촉해 국사봉으로 향했다. 당산과는 다르게 국사봉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른 곳도 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완만한 경사로가 나와 등산하는 재미가 느껴진다. 무의도의 산이 비교적 낮지만 등산로에 돌과 바위가 많고, 지난 호우에 등산로가 쓸려나가 내딛기 힘든 곳도 많다. 그러니 일반 운동화 보다는 홈이 깊게 파인 등산화를 착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 ▲ 무의도의 산은 비교적 낮지만 등산로에 돌과 바위 등 위험요소가 있어 등산 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쉼 없이 산을 올라 정상이 코앞에 다다랐다. 정상을 향할수록 점점 숨이 차오르고 다리 근육이 당겨온다. 하지만 파란 하늘과 그곳에 펼쳐질 서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위로 향하였다.
드디어 국사봉 정상에 올랐다. 발아래는 광활한 서해가 펼쳐져 있었고 이곳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하나개해수욕장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낙조가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곳으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반대편으로는 초록색 들판 한가운데 마을이 보인다. 자연과 마을이 잘 어우러져 있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산 정상에서 부는 서해바람의 상쾌함은 내륙의 산에서 부는 바람과는 차별된 짜릿함이 있었다.
- ▲ 국사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무의도 마을의 전경.
다시 또 발걸음을 재촉해 무의도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있는 '호룡곡산'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큰 돌들과 빗물에 깎여나간 듯 웅덩이가 있어 제법 거칠었다. 산과 산을 잊는 구름다리를 지나자 잘 정돈된 등산로가 나를 반겼고 이어 '쭉쭉' 하늘로 솟은 소나무길이 정상으로 날 인도했다. 이곳을 찾은 보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40여분 산을 오르자 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전망대가 넓게 정돈돼 있었고 벤치 또한 마련돼 있어 하늘과 바다를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동쪽 아래를 내려 보니 소무의도가 눈에 들어왔다.
- ▲ 정상에서는 소무의도와 노을이지는 무의도의 전경을 볼 수 있다.
그곳은 굴 따기, 낚시 등으로 유명한 섬인데 최근에 두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생겼다. 서해를 바라보자 벌써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가볍게 기념촬영을 하고, 해변에서 석양을 감상하기위해 '하나개해수욕장'으로 하산했다.
평지에 내려와 뛰다시피 해 도착한 하나개해수욕장에는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날씨가 좋아 지평선으로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해변에는 바다 끝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눈과 사진으로 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풍경이었다.
- ▲ 하나개해수욕장에 지는 노을이 무의도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 맛집
무의도 인근 해역에는 바지락이 많다. 동죽으로 요리한 칼국수가 일품이고 조개탕을 즉석에서 맛볼 수도 있다. 자연산 광어, 숭어와 낙지 역시 이곳에서 싱싱하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8월 하순부터 잡히는 숭어는 이곳의 어장을 풍부하게 하며 관광객들에게 자연산 회를 맛보게 한다. 어촌지역으로 형성된 마을답게 횟집은 해수욕장 주변에 들어서 있다.
- ▲ 무의도 식당에서는 바지락 칼국수와 다양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승용차 이외에 철도를 이용한다면 공항철도를 타고 용유역에서 내려 도보로 잠진 선착장까지 약 20분 걸린다.
버스는 잠진도까지 223번 인천시내버스가 있으며, 영종 구읍 선착장과 인천공항에서 탈 수 있다.
조선닷컴 미디어취재팀 medi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