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자작글)

너구리의 이실직고.[2]

서프란 2007. 10. 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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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주선에 의해서 이성간의 데이트랄 것도 없는 미팅이 있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회사 구내식당 같은 곳에서

일회용 커피 한잔씩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자리이다.

마르지도 살찌지도 않은 몸매, 쌍꺼플은 없지만 어디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미모,

서로 이름등등 궁금한 것들을 묻고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그렇게 훌쩍 가버렸고

연락처를 서로 건네주고 돌아섰다.

 

그리고 회사 밖에서 다른 업무를 보고 사무실로 돌아 왔는데

직원이 전하는 말,

어떤 뇨자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만남이 참 좋았다믄서 전화해 달라면 안다고...

그러나 나한텐 아무런 감흥의 다가 오지않아 전화할 생각도 없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해 본다.

마주 대하고 얘기를 나누었음에도  별다른 이성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데

이름도 얼굴 모습도 모르는데 몇줄의 글로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수 있는 것인가를...

소변이 마려워 눈을 뜨니  새벽녘이고 잠시 스쳐지나는 꿈을 꾸었던 거다.

 

뇨자 꿈을 꾸거나 돌아가신 조상 꿈을 꾸게 되면 하루종일 조심을 한다.

특히 뇨자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꿈을 꾸는 날이면 초긴장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거의 100% 매우 기분 나쁜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루해가 다 지나갈 무렵, 이슬이 한잔하자는 전화를 받는다.

절친한 배꼽 칭구 넘이다.

이슬이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지나간 과거의 한 토막을 그넘한테 이실직고를 하게 됐다.

 

첫사랑 실패의 시련을 겪고있을 무렵은  그 칭구넘 누이 동생은 중3 이였지 싶다.

그땐 뇨자로 보이지 않았었다.

안 가도 될 군대를 가게 되면서 주고 받기 시작한 편지는 제대후에도 계속되었고

내가 군대 생활이 시작될 무렵, 그 아이는 어느새 고2가 되어 있었다.

오가는 편지는 매주 2통 씩이였고 2~3장 때로는4~5장의 장문이 될때도 있었으니

결코 적은량이 아니였었고

그 편지를 기다리는게 습관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무수한 편지속에 사랑이란 단어를 서로가 한번도 사용적이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고  학생 신분이여서

행여 공부에 지장을 초래할수도 있겠다는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말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서로 그 감정을 느낄수 있을거라는 생각 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제대후 잘 나가는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 취업이 되어

그 바쁜 와중에도 편지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휴가를 내어 그녀가 살고있는 충주로 내려가게 된다.

그녀의 어머님 한테 인사를 드리고

 얘기좀 할게 있어서 데리고 나가겠다고 말씀을 드린후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는 나트막한 언덕에 나란히 앉아

나는 너와 결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프로포즈였던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뇨자에 대해선 별난 재주가 없고 그게 내 한계이니 어쩌랴 !

그녀의 대답은 결혼은 접어두고 연애나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남자 경험이 있다는 말이 더 붙여졌다.

 

군대까지 갔다 온 그 나이에 나는 숫총각이였었지만

남자경험이 있다는 말엔 하나도 신경쓰이질 않았고 연애나 하자는 말이 자꾸 거슬렸었다.

그것이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거절의 의미로 받아 들여졌기 때문이였다.

내가 그 나이에도 숫총각이였던건 순결은 여자만이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니라는

옹고집 같은 생각때문이였었고 그애한테 프로포즈 실패후 미련없이 버리게 되는데

내 생애 처음 품안에 안았던 그 뇨자의 고향동네와 이름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으니

벨걸 다 기억하고 있는 넘임엔 틀림없다.

 

그후 한통에 편지를 보냈다.

결혼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거절의 의미로 알고 여태껏의 일은 없었던 걸로 하자고...

그렇게 두번째의 사랑은 끝나고 나는 불과 한달만에 결혼을 하게 된다.

연애하다 보면 결혼으로 이어질수 있음이고 그말은 거절이 아니였음을

알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건 세월이 한참 지난후

그녀의 남자 동생 결혼식장 로비에서 마주쳤을 때이다.

아들인 듯한  4-5세 정도의 남자애의 손을 잡은채로

그녀는 남의 눈도 의식하지 못한채 눈물을 그렁거리며 내게 건네오는 말,

[내가 살아 오면서 업빠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아요 ? 보고 싶었어요.사모해요.]

나는 주위 사람들이 민망해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 자리를 얼른 피했고

그후로 여태껏 만나본 적도 통화한 적도  없다.

 

맑은 가을하늘에 머물지 못하고 흘러가는 한점의 구름처럼

가끔은 생각이 날때도 있지만  되돌리지 못할 일에 미련을 두어 무엇하랴 !

 

예나 지금이나

나는 뇨자에 대해선 쑥맥임엔 틀림없나 보다. 

 

그런 꿈을 꾸고도

별 탈없이 하루가 지나간게 퍽이나 다행스런 날이다.

 

                         글 / 산골 너구리.

 

 


Your Beautiful Love - Back To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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