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83세의 노인분이 사무실을 방문해서
재산정리의 상담을 마치고 여담으로 들려준 그분 아내에 대한 얘기다.
그분의 아내는17세에 시집을 와서 65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살아있는 부처였다고 한다.
시집와서 죽는날까지 찌든 삶이였는데도 항상 웃는 얼굴이였고
찌푸린 얼굴을 본일이 없다고 한다.
믿기지 않는 얘기이고 많이 과장된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얘기를 듣다보니 과장만은 아닌듯 하다.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농촌 살림이였는데
남편보다 일찍 잠든 모습을 본적이 없고
늦게 일어나는 모습 또한 본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들일에 지쳐 있으련만 밤엔 애들곁에 앉아 헤진 양말이나 옷 가지를 정리하고
때론 책이나 헌 신문을 보며 애들 공부하던 모습을 지켜보고
그걸 보고 자란 덕분이였는지
애들 모두 공부를 잘해 진학에 어려움이 없었고 곧고 바르게 잘 자라 주었다고 했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면 후회스럽고 부질없는 짓이였지만
그런게 못 마땅해 한때 외도로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은 날들이 많았는데
어쩌다 집에 들어오면 옷 갈아 입으라고 내놓으며 때 굶지 말고 다니라고 했다고 한다.
어디 있다 오느냐고 왜 안 물어 보느냐고 하면
웃으며
[ 당신을 믿으니까요.] 그말 뿐이였다고 하면서
영감님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보다못한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를 보고
바보 천치라며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애라고 까지 했다고 한다.
그 뒤론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 왔는데
어느날 밤
자는듯이 심장 마비로 65 세의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시골만 아니였어도 어떻게 살릴수가 있었을거라며 몹씨도 아쉬워 한다.
왜 그 여자분이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겠는가 ?
인고와 희생의 삶을 살아온 옛날의 우리네 어머니 모습이 아닌가 싶다.
얼마전 미국에 사는 큰 아들의 권유로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여행하고 돌아 왔는데
가던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에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함께 있을때엔 귀하고 소중한걸 모르고 살다가
뒤늦게 빈 자리가 소중하고 귀한걸 깨닫는다.
사무실을 나가는 영감님의 뒷 모습을 보며
그다지 좋아 하지도 않는 [ 있을때 잘해]의 노랫말을 떠 올리며
괜스레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글 / 산골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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