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가풍 정원(장가계 민속원)
처음엔 사찰인줄 알았는데 들어가는 입구에서 아가씨들이 정종같은 술을 따라준다.
토가족의 토후가 살던 곳을 복원하여 재현한 장가계 토가풍정원(장가계 민속원)은
인문경관과 자연풍경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곳으로
토가족의 농경문화, 전쟁무기, 건축, 공예, 공연을 통한 민속풍물과
음식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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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용은 여러곳의 처마밑 빗물받이에 모인 빗물이 모아져 흘러내리는 빗물 홈통이다.
그 밑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그 연못속에는
돌로 만든 악어들이 입을 벌리고
용의 입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먹는 형상을 하고 있다.
얼핏보면 하나의 장식품쯤으로 보고 그냥 지나칠 부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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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위에 올려진 기와장이 어른의 큰 손바닥만한 크기의
암기와와 숫기와로 되어 있고 두께가 1cm 정도이다.
기왓장이 왜 그리 작고 얇은지를 물어봤다.
현지 가이드나 따라간 가이드도 모른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 천청을 살펴보고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짐작해 본다.
천정은 우리네처럼 서가래 위에 흙을 올려놓고 그위에 기와를 얹어 놓은 게 아니라
서까래 위에 바로 암기와를 올려 놓아서 내부의 밑에서도 기와가 그대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이곳에서는 큰 나무를 구할 수가 없어서인지 기둥조차 가늘다.
이곳 산에서는 삼나무(메타세콰이어 - 일명 쓰기)가 자생하고 있으나
기후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름드리 나무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목재가 약하므로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만큼 무게의 기와를 만들다 보니
기와가 얇아질 수 밖에 없고
얇다보니 넓게 하면 깨지기 쉬우므로 얇으면서 작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자산 엘리베이터 높이 326m 로 대만의 여자 실업가가 투자 설치한 것이며
완공일로부터 50년 뒤엔 중국 정부로 넘어간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돈 안 들이고 인민들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은 세금대로 거둬 들이고.
50년 뒤에는 내것이 되니 1타 3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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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불카에서 내려다본 시골풍경인데 유채꽃이 막 피고 있었으며
일본처럼 울타리도 없고 북한사진에서 보듯 거의 똑같은 가옥형태를 지니고 있다.
층수가 높고 낮음에 따라 부의 많고 적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처럼 울타리가 없는데 없는 이유는 일본과 전혀 다르다.
일본은 지진 발생시 신속한 대피를 위해 담장을 설치하지 않지만
중국은 땅의 소유가 국가이여서 네땅 네땅 구분 개념이 없으니 어디에다 담장을 치랴 !
가옥들은 대부분 2층이나 3층으로 돼 있다,
년중 200일 이상 비가 와서 습기가 많기 때문에 2층에서 기거를 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 말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나 꼭 그 이유만은 아닌듯 싶다.
위도상 아열대쪽에 가까우나 대륙성 기후를 지녀 대만처럼 습기가 많지않아 보인다.
습기가 많으면 나무줄기나 바위에 이끼가 많이 붙어 사는데 이끼가 별로 없음은
비는 자주 오나 대기중에 습기가 많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도둑이 왜 없으랴 !
담장도 울타리도 없으니
아래층을 농기구나 수확한 곡물등
필요한 물건들을 꺼내 쓰기 쉽게 넣어두는 공간(창고)으로 사용하고
여름엔 40도를 웃도는 더위라고 하니
원두막처럼 2층을 주거공간으로 사용하는듯 싶다.
곡물이나 농기구들을 등에 메고 매번
2층이나 3층으로는 오르 내릴려면 엄청 불편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주어진 환경이 만들어준 결과물이지 싶다.
천문산 올라가는 중간에서 내려다본 풍경인데
절벽에 세워진 중간 철탑은 모두 인력으로 세워졌으며
아레에 보이는 천문동으로 올라가는 자동차길도 모두 인력을 동원해 만든 길이라고 한다.
농담으로 중국에서 제일 많은 것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이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천문산은 해발1,518 m 이며 천문동으로 가는 케이불카 길이는 7,455m.
이것 역시 민간인(화교)이 투자했으며 준공일로부터 50년간 사용후
중국정부로 이양해야 한다고 한다.
황룡동굴 들어가는 입구에 많은 물레방아가 있었는데
우리의 물레방아는 위에서 물이 흘러내려 수차를 돌리는데 반해
이곳 물레방아는 수로를 따라 밑으로 흐르는 물로 수차를 돌리며
사진중 가운데 제일 큰 수차에 빗각으로 보이는 것(하얗게 보이는 부분)은
돌아갈때 물을 길어 올리는 사각 물통이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길어 올려진 물은 옆의 여러 작은 수차를 돌리고 있었다.
동굴의 규모는 동양 최고답게 무척이나 크다.
내부에는 지하수가 있어 배로 이동하는 구간도 있다.
벽이나 천정을 보면 바다 뻘의 퇴적층이 암석으로 변화된 현무암으로
마치 구들장을 만드는 것 같은 암석들이 가로로 층을 이루고 있어 빗물이 스며들지 않아
내부가 습하지가 않았다.
암석의 종류도 종류지만 천정 위에서 물이 흘러 내리지 않기 때문에 종유석이나
석순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의 동굴이 아님에도 석순이 있었다.
석회석 동굴의 경우,
위에 매달려 있는 종유석이 크고
그 밑에서 자라나는 석순은 대체적으로 많이 짧다.
어떤 것은 종유석과 석순이 맞붙어 기둥처럼 된 것도 있는데
위의 사진에서 보듯 이곳의 석순위엔 종유석이 없는 곳이 대다수다.
인공으로 만든 것이라는 의구심이 생기기에 충분하다.
150 만년전 어쩌고 저쩌고 현지 조선족 가이드는 설명하고 있지만
인공으로 만든 흔적같은 걸 많이 목격할 수 있었다,
석순이 있는 공간 주변의 벽면에 모두 한결같이 같은 색갈의 흙칠을 덧칠해 놓았고
습기가 없어 벗겨지지 않고 있었으나 덧칠하는 과정에서 빠진 부분이나 길을 넓히기 위해
암반을 깨트려 낸 부분에는 어김없이 암석 본래의 색상이 들어난 부분도 있었다.
사용하다 남은 것인지 아니면 보수용으로 가져다 놓은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석순의 무리가 있는 곳에선 제법 많은 양의 찰흙을 표시나지 않게 깔아 놓은 것도 볼 수도 있었다.
만리장성을 쌓은 중국인들 답게 대단하긴 대단하다.
동굴을 둘러보는 동안,
칼을 들고 하늘을 펄펄 날라 다니는 중국 무협영화의 장면들이 자꾸만 떠올랐었다.
Mar. 24. 2011.
글 /산골 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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