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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하얗게 피는 녹차꽃, 보셨나요?
[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 지난 15일 밤 9시 '세심원'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엔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답니다. 북두칠성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이어서 북극성과 작은곰자리, 맞는지도 모르면서 서로 저 별들이 자기가 아는 별자리들이라고 우겼지요. 안에 들어가 탁자 앞에 앉았습니다. 탁자에 조촐한 음식들을 차리고 있었는데, 탁자 가장자리에 꽃병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꽃병엔 푸른 잎을 단 나뭇가지 하나가 꽂아져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 꽃병을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그것은 바로 차나무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푸른 잎 아래에 매화꽃보다는 조금 더 큰 하얀 꽃이 두 송이 피어 있었습니다. 하얀 꽃잎 안으로 노란 꽃술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분명 방금 보고 들어온 하늘의 별들이 바로 내려와 나뭇가지에 피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맑게 빛나던 하늘의 별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꽃이 피어날 수 있겠어요? 파란 차나무 잎으로 더욱 하얗게 빛나는 꽃잎들이 순결하고 소담스러운 산골처녀처럼 다소곳이 피어 있었다니까요. 잠자리에 들면서 꿈을 꾸고 있었답니다. 아침에 만날 많은 차나무꽃들, 그 꽃들을 맞는 설레는 마음, 그 많은 녹차밭의 푸름만 보았던 생각에 하얀 차나무꽃들이 피었을 광경,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벽까지 뒹굴다가 아뿔싸 늦잠을 자버리고 말았답니다. 버려진 땅을 가꾸어 만든 '세심원' 11월 15일 밤에 산을 좋아하는 '풀꽃산행'팀 7명이 전남 장성군 북일면 금곡 영화마을 위쪽에 있는 쉼터 '세심원'을 찾았답니다. 지난 8월 <한겨레신문>에 자세하게 소개된 이 '세심원'은 30년 공무원 생활을 명예퇴직으로 그만 둔 변동해씨가 버려진 잠실을 개조하여 만든 쉼터랍니다. 장성군 금곡 영화마을은 <태백산맥>이란 영화를 찍어서 알려지기 시작한 시골입니다. <태백산맥> 마지막에 마을을 불태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마을입니다. 어떻게 보면 순수 우리나라 시골 마을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내 마음의 풍금>도 찍었답니다. 시골 처녀가 이 곳에 부임해 온 총각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순수 순도 100%를 드러내는 사랑의 열병이 펼쳐졌던 시골 마을의 배경이 바로 이곳 금곡 영화마을이지요. 1995년에 명예퇴직을 한 변동해씨는 누에치다가 버려진 땅 이곳을 고치고 가꾸기 시작하여 1999년에 '세심원(洗心院)'이라고 이름 짓고 쉼터로 만들었답니다. 집을 거의 새로 지으면서 참숯을 바닥에 깔고, 편백나무로 마루를 놓았으며, 황토와 죽염까지 써서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답니다. 처음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편하게 쉬라고 김치와 쌀, 된장 등을 준비해 놓았고, 100여 개의 열쇠를 복제하여 나누어주었답니다.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경비를 전혀 받지 않고 오히려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준비까지 다 해 놓은 것입니다. 이 '세심원'과 그 주인 변동해씨에 대한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7년 동안 약 1만5000명 정도가 이 곳을 다녀갔답니다. 우리들도 그 소문을 듣고 찾은 것이지요. 우리가 이곳을 찾은 건 하룻밤 세심원에서 보내고 단풍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문수사와 뒷산 청량산을 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삼림욕으로 널리 알려진 축령산 조림지도 산책하고 말이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심원 주위에는 많은 차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밭에도 심어져 있었고, 언덕에도 심어져 있었고, 뜰에도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나무마다 몇 송이씩 매달려 있는 하얀 꽃이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사로잡았습니다. 꽃과 열매가 만나는 나무, '차나무' 변동해씨는 이 곳 '세심원'을 만들면서 주변에 많은 차나무 씨앗을 뿌렸답니다. 차가 정신을 맑게 해 주고, 암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까지 예방해 주는 효과를 가졌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술보다는 차를 더 많이 마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주변 빈터에 차나무 씨앗을 뿌렸답니다. 가을 햇살을 받아 차나무의 잎은 더욱 푸르렀습니다. 그런데 그 차나무 가지마다 하얀 꽃들 몇 송이씩 매달려 있었으니, 뜻밖에 만난 그 하얀 차나무꽃으로 인하여 다시 마음 가득 밀려오는 설렘을 무어라고 표현할지 몰랐습니다. 10월 말부터11월까지 하얀 꽃을 피우는 차나무는 찬서리나 첫눈을 맞으며 더욱 영롱해져, 옛 선인들은 차나무꽃을 '운화(雲華)'라고 좋아했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차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데는 꼭 1년이 걸려 다음 해에 피는 꽃과 그 열매가 같이 매달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 즉 꽃과 열매가 만나는 나무라고 좋아한답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차나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오는 전남 보성의 차밭을 많이 보았습니다. 녹색과 곡선이 어우러진 풍경이 산등성이까지 펼쳐져 있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신선함, 차곡차곡 늘어선 차나무의 행렬의 새롭고 시원한 느낌, 녹색의 물결이 마음 가득 파고드는 차밭 말입니다. 그 아름다움이 늘 기억 속에 푸른데, 차가운 겨울에 하얀 차나무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봄 온통 하얗게 피어나는 매화처럼 많은 꽃들이 나무를 감싸야만 알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차나무꽃은 온통 하얗게 뒤덮는 꽃은 아닙니다. 가지마다 몇 송이씩 피었다가 지면 또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맺힌 꽃망울부터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없을 것 같은, 담백한 차 맛 같은 향기가 안개처럼 가득 퍼져 있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가을의 내음이 무르익어 마음 가득 퍼지고 있는 세심원에 은은하게 퍼지는 차꽃의 향기가 혀끝에 감도는 차 맛의 감칠맛과 교차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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