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에이지의 발생
사실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정의와 그 발생 기원은 전문가들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 10년 남짓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 확고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New Age' 음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60년대에 이른다.
근데 여기서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왜 `New Age'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하는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기는 하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견해가 말뜻 그대로 `새로운 세대가 듣는 음악'이란 뜻에서
뉴에이지로 명명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당시 뉴에이지 수용층은
소위 `여피(Yuppie:Young Upwardlymobile Professional)'라는 계층으로
대개 20대후반에서 30대 중반이었다.
물론 이들도 새로운 세대라고 할수는 있으나 당시 10대를 중심으로 팬을 형성하던 락큰롤 뮤직을 생각하면 오히려 락큰롤 뮤직이 신세대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뉴에이지 음악의 명칭은 당시 미국 사회에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준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와 연관되었다는 것이 더 적합한 견해로 생각된다.
`과학을 바탕으로 한 서구의 사상들은 20세기에 들어 그 한계를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젠 이런 한계 극복을 위해 새로운 사상이 필요했다.
이 새로운 사상에는 인도사상이나 불교 사상을 중심으로한 동양 사상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문제로 기독교와 마찰이 있기는 하다. 이 문제는 후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것이 뉴에이지 운동이다.
따라서 이런 뉴에이지 운동과 함께 동양의 참선이나 수양,요가 등도 유행하였는데
이를 위한 음악들도 상당수가 나왔다.
결국 이런 `명상이나 참선을 위한 음악'들이 뉴에이지 운동과 연관되어 `뉴에이지 뮤직'이라 불리게 되었고 여기서 뉴에이지 음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당시 이런 종류의 음악중에서 가장 대표적이었던 앨범이 째즈 뮤지션
Tony Scott의 "Music for Zen Meditation(64)"이다.
`Zen'이란 일본에서 토착화된 불교 선종의 일종이다.
결국 앨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앨범은 불교 참선을 위해서 만든 음악인 것이다.
또 이 앨범에서는 클라리넷과 일본의 전통악기와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
째즈계에서 80년대 본격적인 뉴에이지가 탄생하기 전까지 파격적인 앨범으로 남아 있었다.
이 앨범에서 우리는 최근까지 뉴에이지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 되고 있는 2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명상이나 참선을 위한 음악'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차분하고 느린 템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고
격정적 멜로디가 강한 드럼 비트는 금기시 되었다.
때로는 심리학적 이론이 적용되어 반복을 통한 치밀한 곡 구성을 보이기도 했다.
둘째로 탈문화적이고 절충적이라는 점이다.
위 앨범은 일본의 불교를 주제로 하다보니 일본의 문화적 색채가 자연히 배여들었다.
게다가 음악적으로도 일본의 전통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수많은 뉴에이지 뮤지션들이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동양의 전통 종교나 사상을 중요한 주제로 삼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연주의'와 불교의 `인연설' 등이다.
특히 자연주의는 뉴에이지 음악의 심블이 될 정도로 핵심적인 요소이다.
조지 윈스턴의 앨범 표지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93년도에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던 ystein Sevg의 "Link"란 앨범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목소리와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심오하고 진정한 각자의 개성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또한 우리자신이 인생과 지구와 우주속에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서 불교 인연설을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최근 뉴에이지 뮤지션들은 동양 뿐만 아니라 남미나 아프리카 등지의 문화와 전통 음악도
접목시키고 있어 이른바 `World Music'을 형성하고 있다.
즉 `명상이나 참선을 위한 음악'이라는 점과 `자연주의를 비롯한 동양 사상의 반영' 이라는
두 가지 점이 뉴에이지 음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이렇게 보면 뉴에이지 음악은 `명상이나 참선'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 목적 의식을 떨쳐버리고 단지 이런 음악을 음악으로서 즐기는 계층이 있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이런 계층은 '여피'라는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었다.
이들은 뉴에이지 음악의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피로와 긴장을 푸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
그 후 70년대의 플롯 주자 폴 혼(Paul Haun)이나
바이올린 주자 스티브 킨들러(Steve Kindler) 등에 의해서 명맥이 이어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현재 뉴에이지의 선구자라고 불리고 있다.
그런데 뉴에이지 음악을 `명상과 참선'이라는 목적 의식을 생각하지 않고
그 음악적 스타일만 생각하면 이와 비슷한 종류의 음악들을 다른 장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경음악을 해오던 폴 모리아(Paul Mauriat)나 퍼시 페이스(Percy Faith),
제임스 라스트(James Last),스윗 피플(Sweet People) 등이 이런 부류의 뮤지션들이다.
또한 째즈의 시인이라는 빌 에반스(Bill Evans)와 같은 백인 취향 째즈(Whitl Jazz) 등도
뉴에이지 스타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 프로그래시브계에서 활동하던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나 얀 해머(Jan Hammer),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등도 뉴에이지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다.(이들은 현재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분류된다.)
종합하면 60년대 명상음악으로 출발한 `뉴에이지', 70년대 클래식과
프로그레시브의 음악들이 합쳐져서 80년대의 본격적인 뉴에이지가 탄생하게 된다.
2. 뉴에이지의 본격적인 시작
80년대 뉴에이지를 탄생시키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람중에는
폴 윈터(Paul Winter)를 빼놓을 수가 없다.
섹소폰 주자이기도 한 폴 윈터는 `Paul Winter Consort'를 결성하여 70년대말에서 80년대초반까지 수많은 레코딩과 콘서트를 해왔다.
그는 그랜드 캐년이나 국립 공원 등지에서 콘서트를 벌리며 자연주의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이 `Paul Winter Consort'를 통해서 수많은 뉴에이지 뮤지션들이 배출되기도 했는데
관악기 주자인 폴 맥캔들리스(Paul McCandless)와 낸시 럼벨(Nancy Rumbel) 등이 대표적이다. 폴 윈터는 `뉴에이지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뉴에이지 음악의 대중화에 앞장선 사람은 바로 윌리엄 애커만(William Ackerman)이다.
그는 76년에 자신의 전재산을 투자해서 `Windham Hill'이라는 레코드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80년대 들어 조지 윈스턴의 앨범이 대대적인 히트를 거두고
마이클 헤지스(Michael Hedges)나 리즈 스토리(Liz Story)와 같은 걸출한 뮤지션을 발굴해내는 등 80년대 뉴에이지 돌풍을 일으켰다.
그래서 대부분 이 80년대를 뉴에이지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본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할 점은 왜 이런 윈드햄 힐의 음악이 뉴에이지로 불렸는가 하는 점이다. 조지 윈스턴의 앨범을 생각해보면 쉽게 문제가 풀린다.
우선 조지윈스턴의 음악은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명상적 분위기와 잘 어우린다. 또 앨범 커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주의도 담고 있다.
이런 요소들은 60년대 뉴에이지라 불리던 명상음악으로 불리던 그런 음악과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조지 윈스턴으로 대표되는 80년대 초반의 윈드햄 힐 음악들은
60년대의 뉴에이지 음악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뉴에이지 음악은 60년대의 뉴에이지 음악과 매우 다르다.
60년대 뉴에이지 음악은 `명상과 참선'이라는 목적을 갔고 있었으나
80년대 뉴에이지는 그렇지 않다.
단지 60년대 뉴에이지 음악에서 목적의식은 떼어버리고 음악적인 요소만 빌려와서 만든
음악 그 자체의 음악이다.
또 60년대 뉴에이지 음악은 너무 지루하고 음악적 감흥이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음악이었고
그래서 대중적인 호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의 뉴에이지는 째즈나 팝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뉴에이지적인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세련되게 각색하여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현대인들에게 뉴에이지 음악의 매력이라면 `자연주의'와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빌딩숲 속의 메마른 현대 생활에서 우리의 정서를 촉촉히 적셔주는 아름답고 포근한 이미지,
이런 점들이 현대인에게 마치 건강 식품 같은 매력을 주었을 것은 당연하다.
결국 날이 갈수록 뉴에이지 음악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났고,
뉴에이지계에서도 수많은 스타들이 나타났다.
또한 윈드햄 힐 사의 성공으로 인해 뉴에이지 전문 레이블들도 우후 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83년에 생긴 나라다(Narada),같은 해에 만들어진 프라이빗 뮤직(Private Music),
그리고 만하임 스팀롤러(Manheim Steamroller)를 조직해 80년대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벌인
아메리칸 그라마폰(American Gramaphone)등 그 수는 셀 수가 없다.
3. 뉴에이지계의 혼란
80년대 초의 뉴에이지 음악은 조지 윈스턴으로 대표되는 순수어쿠스틱 솔로 연주곡들이었다.
피아노 솔로곡으로 조지 윈스턴 외에 데이빗 란쯔(David Lanz)와 마이클 존즈(Michael Jones)가
스타로 자리메김을 하고 있었다.
마이클 헤지스(Michaek Hedges),윌리암 애커만(William Ackerman),
알렉스 드 그라스(Alex De Grassi) 등은 솔로 기타리스트로 엮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85년부터 앨범을 발표하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프라이빗 뮤직(Private Music)의 음악들은 뉴에이지계에 새로운 파격을 가했다.
프로그레시브나 락계의 거물급 뮤지션들을 포진시킨 후 전자음과 드럼비트를 이용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전자음의 화려한 사운드,일렉트릭 기타의 거친 음색,드럼과 베이스의 강한 비트 등
어느 모로보나 기존의 뉴에이지 음악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
러나 이런 음악이 뉴에이지로 분류되었다.
상당히 의문스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프라이빗 뮤직의 음악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뉴에이지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다.
패트릭 오헌(Patrick O'Hearn)이 고대의 신화적 신비로움을 전자음에 접목시킨 점이나
앤디 섬머즈(Andy Summers)와 같은 기타리스트는 동양적인 사운드와 일렉트릭 기타의 절충을
시도한 점등은 뉴에이지 뮤지션다운 발상들이다.
그러나 이런 점들만으로 뉴에이지 음악으로 분류하기에는 기존의 뉴에이지 음악에 비해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그렇다고 프라이빗 뮤직을 기존에 존재하는 어떤 장르로 분류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가장 비슷한 장르로 프로그래시브를 들 수 있기는 하다. 그
러나 80년대 들면서 프로그래시브계는 극도로 침체하고 반대로
당시 뉴에이지의 물결은 엄청나게 거셌다.
결국 80년대의 엄청난 뉴에이지 돌풍,그리고 보컬곡이 아닌 연주곡이라는 점 등으로
프라이빗 뮤직의 음악들도 뉴에이지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계기로 뉴에이지계는 대 혼란을 겪게 되었다.
기존의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못하는 `갈 곳 없는 음악'들이 모두 뉴에이지로 분류되게 되었다.
마치 잡동사니와 같이 되버렸다.
이런 혼란을 더욱 부추긴 것은 86년 그레미상 수상에서였다.
86년에 처음으로 뉴에이지 수상 부문에 생겼는데 여기서 수많은 순수 뉴에이지 뮤지션들을 제치고 빌더글라스나 쟝미셸자르 같은 전자음악 뮤지션들이 지목되었다.
당시 수상을 한 안드레아스 폴덴바이더(Andreas Vollenweider) 엮시 일렉트로닉 하프를 연주하는 전자음악계 뮤지션이었다.
그 이후 째즈,락,프로그래시브계의 수많은 뮤지션들이 뉴에이지로 전향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뉴에이지계는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을 겪게 되었다.
같은 음악이 째즈로 분류되는가 하면 뉴에이지로도 분류되는 혼란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혼란을 제2의 발전으로 그러나 이런 혼란스러움이 지닌 하나의 큰 장점이 있었다.
이제 뉴에이지는 어떤 관례적 형식에도 억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실험적인 장'이 된 것이다.
이런 장점을 살려 탄생한 대표적인 것이 `일렉트로닉 뉴에이지'이다.
일렉트로닉 뉴에이지는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반젤리스나 쿠스코,쟝미셸 쟈르 등은 기존에 프로그래시브계에서 활동하다가
프로그래시브의 쇠퇴로 뉴에이지로 재분류된 케이스들이다.
그러나 진정한 일렉트로닉 뉴에이지는 패트릭 오헌(Patrick O'Hearn)이나
데이빗 아켄스톤(David Arkenstone) 등의 신선하고 새로운 전자음악에서 비롯되었다.
윈드햄 힐 소 속의 쉐도우 팩스(Shadowfax)도 일렉트로닉 뉴에이지의 개척자로 인정받는 그룹이다. 이 외에도 전설적인 프로그래시브 그룹은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이 88년부터
뉴에이지로 전향했고,락계의 천재적인 키보드 주자 에디 잡슨(Eddie Jobson)도 8
5년에 뉴에이지 앨범을 발표했다.
여성 뮤지션 수잔 시아니(Suzanne Ciani)는 클래시컬한 전자음악을 만들어 내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점점 이런 일렉트로닉 뉴에이지 뮤지션들은 늘어감에 따라
80년대 초반의 순수 어쿠스틱 뮤지션들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더구나 86년 그레미상에 뉴에이지 부문이 생긴 이래 수상자 명단을 보면
순수 어쿠스틱 뮤지션들의 이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96년 그레미상 뉴 에이지부문 후보에 오른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
패트릭 오헌(Patrick O'Hearn),수잔 시아니(Suzanne Ciani) 모두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자 음악 뮤지션들이다.
이런 일렉트로닉 뉴에이지는 과거 프로그래시브로 분류됐을 법한 음악들이
프로그레시브의 극도의 침체에 따라 뉴에이지로 분류된 것으로 생각된다.
프로그래시브계 뿐만 아니라 째즈 계열의 뮤지션들도 뉴에이지계에서 활동이 활발하다.
앞에서 빌 에반스의 음악은 뉴에이지 스타일과 매우 비슷하다고 언급했듯이
째즈계열의 차분하고 서정적인 연주곡들은 뉴에이지로 분류되고 있다.
째즈계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마이클 콜리나(Michael Colina)나
베이시스트 마이클 맨링(Michaek Manring),기타리스트 랄프 일렌버거(Ralf Illenberger) 등이
대표적인 째즈 계열의 뉴에이지 뮤지션들이다.
케니지(Kenny G)도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뉴에이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나라다(Narada)에서는 이런 혼란한 뉴에이지계를 교통정리나 하듯
`Lotus' `equinox' `mystique'의 세개의 서브 레이블을 만들었다.
`Narada Lotus'는 순수 어쿠스틱 음악으로 데이빗 란쯔(David Lanz)나
마이클 존즈(Michael Jones) 등이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Narada Equinox'는 휴전계의 뉴에이지로 째즈 계열의 뮤지션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Narada Mystique'는 일렉트로닉 뉴에이지로 데이빗 아켄스톤(David Arkenston)이 대표적이다.
4. Contemporary Instrumental Music의 형성
뉴에이지계가 이렇게 엄청나게 커지자 더 이상 `New Age'란 단어는 적합하지가 못했다.
또한 아직도 뉴에이지 음악을 `명상이나 참선을 할 때 듣는 음악'정도로 여기거나
`사탄의 음악'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9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용어가 평론가나 음악가들 사이에 쓰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컨템포러리 인스트루멘탈(Contemporary Instrumental)'이다.
물론 이 용어 엮시 그리 적합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크게 확대된 뉴에이지계를 포용하는 데는 어울리는 용어라고 할 수 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용어를 쓰고 있다.
이제 뉴에이지(New Age)는 컨템포러리 인스트루멘탈이라는
음악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리고 컨템포러리 인스트루멘탈이라는 거대한 장르속에서 뉴에이지의 혼란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즉 뉴에이지(New Age)는 컨템포러리 인스트루멘탈 속의 하나의 스타일로
80년대 초반 조지 윈스턴과 같은 순수 어쿠스틱 음악의 스타일을 일컫는다.
뉴에이지 스타일을 좀더 팝적으로 만든 종류의 음악을 `Adult Alternative'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 스타일은 쉽게 생각하면 `가사만 없는 팝음악'으로 팝적인 요소가 많아서 부담없고 편안하다. 야니(Yanni)나 존 테쉬(John Tesh) 등이 대표적이다.
`Neo-Classic'이란 스타일은 말그대로 클래식을 좀더 새롭게 만든 것으로
칩 데이비스(Chip Davis)가 이끄는 만하임 스팀롤러(Manheim Steamroller)의
`Fresh Aire'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 앨범은 현재까지 7집까지 발표했는데 발표하는 앨범 족족 골든 내지
플래티늄 넘버를 기록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바흐(Bach)나 드뷔쉬(Debussy)의 음악들이 인기가 높다. 윈드햄 힐 레코드에서 발표된 "Bach Variation"과 19세기 인상주의 작곡가들의 음악을 변주한 "Impressionist"라는 앨범들이 이런 스타일의 음악들이다.
`Progressive Electronic'는 `Electronic New Age'라고 하며 뉴에이지라는 장르가 생기지 않았다면 이런 음악들은 그냥 프로그래시브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쟝미셸자르나 쿠스코,반젤리스 등이 과거 프로그래시브 뮤지션이었다가 현재 뉴에이지 뮤지션으로 분류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스타일은 앞으로도 가장 활동이 활발하고 전망이 밝은 스타일로 패트릭 오헌(Patrick O'Hearn), 쉐도우 팩스 (Shadowfax), 데이빗 아켄스톤(david Arkenstone) 등에 의해서 크게 발전되었다.
또 하나의 주류를 이루는 스타일중에 하나가 `World Music'이다.
`Ethnic Fusion'이라고도 하며 여러 나라의 토속 문화와 전통 음악을 접목시키는 종류이다.
과거 뉴에이지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뉴에이지를 컨템포러리 인스트루멘탈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컨템포러리 인스트루멘탈이라는 용어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80년을 뉴에이지의 본격적인 출발로 본다면 이제 16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가까운 일본에까지 뉴에이지 전문 레이블이 생겼다.
소니나 워너브라더스 같은 메이저 레이블도 슬슬 뉴에이지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는 기타로, 소지로, 토미타 등의 훌륭한 뉴에이지 뮤지션들을
세계로 진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병우나 김 광민과 같은 뮤지션들이 뉴에이지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80년대 초의 신선한 돌풍이 마니 수그러들었고 락이나 째즈와 같은
다른 대중 음악에 비하면 그 수용층도 상당히 작다.
이제 15년을 넘긴 짧은 역사를 생각하면 아직 뉴에이지계를 장담하기는 너무 이르다.
그러나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는 뉴에이지 장르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신선하고 새로운 음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5. 뉴에이지 - 과연 사탄의 음악인가?
필자가 뉴에이지 음악을 접하면서 겪었던 가장 어려움중의 하나가 바로
`사탄의 음악'이라는 편견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사탄의 음악'이라는 얘기는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거의 모르는 독자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종교적,사회적인 문제로 매우 팽창되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는 가능한한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하겠다.
뉴에이지 음악이 사탄과 연관되게 된 것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과의 연관성이다.
그래서 먼저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잠시 알아보고자 한다.
뉴에이지 운동은 60년대 `신과학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신과학 운동이란 그동안 서양을 떠받들어오던 `기계론적이고 분석론적인 사고'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과학 사상을 찾고자 동양 및 신비주의적 사상을 과학에 도입하려던 운동이었다.
이런 움직임이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역에 확산되면서
이른바 `뉴에이지 운동'이 탄생하게 되었다.
두 번의 커다란 전쟁을 겪고 전후 물질 사회의 갖은 폐단이 노출되자
사람들은 그 동안 서양을 이끌어온 물질 문명을 비롯한 여러 사상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히피족(Hippie)족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서양인들은 시선을 동양으로 뻗쳐서 인도 및 불교 사상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당시 인도의 몇몇 요기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에 의해 철저히 무시 당해왔던 고대의 신비주의 사상들도
다시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결국 이런 것들은 대부분이 기독교(특히 개신교)의 사상과 어긋나게 되었다.
뉴에이지 운동 사상에서는 예수를
불교의 부처나 이슬람교의 마호메트와 동등한 선지자로 보고 있다.
즉 특정 종교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의 종교만이 참 종교이며 불교나 이슬람교를 비롯한 나머지 종교들을
모두 악마로 여기는 기독교의 사상에 비춘다면 심히 거슬리는 것이다.
또한 힌두 사상의 영향으로 뉴에이지 사상은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었다.
따라서 인간은 영적인 각성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독교 사상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철저하게 신에게 속박되어 있는 존재이며
신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이 신의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뉴에이지 사상은 도가의 영향도 받아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자연주의 사상을 근본사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 역시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기독교 사상에 배치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있다.
세상의 사물들에서 `기독교적인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를 `사탄적인 것'으로 본다.
극도의 배타성과 폐쇄성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위의 뉴에이지 사상 엮시 기독교 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에
`사탄적인 것'으로 몰리는 것이다.
심지어는 `뉴에이지 사상'을 `사탄교' 내지는 `악마주의'로 보기까지 한다.
`사탄교'나 `악마주의'라 하면 사람이나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
집단 살인이나 강간 등을 연상하기 쉽다.
뉴에이지 사상을 이런 사탄교나 악마주의 몰아부치는 것은 기독교의 배타성이
너무 심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뉴에이지 사상의 어떤 면을 보더라도 이런 사탄교와 연관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우선 뉴에이지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조직적으로나 계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 스스로가 점차적으로 각성이 일어나 서서히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 것이
뉴에이지 운동이다.
매릴린 퍼거슨(Marilyn Feguson)은 `물병자리의 공모(The Aquarian Cospiracy)'란 저서에서
이것을 사람들 사이에서 `공모'가 일어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물병자리의 공모는 우리나라에서는 `뉴에이지 혁명(정신세계사)'라는 번역서로 출간되었음.
뉴에이지 사상에 대한 총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다.)
더구나 뉴에이지 사상은 철저하게 `인간 중심'인 사상으로 어떤 절대자도 거부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여호와나 그리스도는 물론 이거니와 `사탄'과 같은 존재를
섬길 이유가 전혀 없다.
결국 뉴에이지 사상이란 간략히 말하면 서양 사상에 한계를 느끼고 이를 극복하고자
동양이나 신비적인 사상을 도입하려고 시도한 진보적이고 건전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기독교 사상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사탄이니 악마니 몰아부치는 것은
기독교의 폐쇄성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사탄의 음악인 이유도 위와 같다.
뉴에이지 음악들은 상당수가 위의 뉴에이지 사상과 연관된 내용들이 많다.
특히 `자연주의'가 그러하다. 조지 윈스턴의 "December"의 앨범 표지를 연상해보면 알 수 있듯이 뉴에이지 음악은 유독 자연을 소재로 한 음악들이 많다.
또 불교를 비롯한 동양 및 남미,아프리카 등의 전통 사상이나 종교를 소재로 한 내용들도 많이 있다.이런 내용들이 모두 기독교의 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에
뉴에이지 음악이 사탄의 음악으로 낙인 찍힌 셈이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음악은 순수한 예술일 따름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것은 단지 음악을
`종교적 전파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예술과 종교는 엄연히 서로 침범할 수 없는 다른 영역임을 기독교에서 망각하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 `사탄의 음악'인 이유는 대략 위와 같다.
필자는 이렇다 저렇다 말은 하지 않겠다. 단지 듣는 사람의 판단이 중요할뿐...
출처: KANGWON NATIONAL UNIVERSITY. GEOGRAPHIC EDUC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