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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부처님의 무소유

서프란 2010. 3. 2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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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는 물질적인 무소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소유가 아닙니다.

가 손을 가졌다면 그게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설사 물직적인 무소유를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산속에 기거하면서 조그마한 정원에 연못과 나무를 보며 즐거워 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소유가 아닌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무소유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 간다는 자체가 소유가 전제되는 것이고 그런 소유 없이는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무소유는 나없음, ‘무상고무아를 말하는 것입니다.

소유하는 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소유한다라는 나조차도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유할 것도 없다는 무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게 아니고 세속적인 소유를 말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누가 무소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산속에서 혼자 산다고 한들 움막이나 토굴이나 암자는 소유 아닙니까?

텃밭을 일구고 소욕지족을 해도 소유는 소유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의미의 무소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누가 소유를 한단 말입니까?

그런 소유를 말하는 사람은 불교의 기본인 무상고무아에 대한 개념도 없는 사람의 말입니다.

 

물론 세상속에서 취착하는 삶보다는 훨씬 단촐하고 초라할지 몰라도 그것도 엄연히 소유입니다.

그런 소욕지족의 삶을 살면서 '그래서 난 무소유의 삶을 산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이미 거짓된 자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뜻을 모르고 그릇된 말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위선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인식의 무소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쥘 것도 없는데다 쥘 나조차도 없는걸 안다면 어떻게 그에게 소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두고 무소유. 소유할 것도, 소유할 자도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런 시구가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사람에게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 앉은 애 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보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전해 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법정스님, <좋은 친구> 중에서-